정부가 '복마전'으로 변질한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시장을 바로 잡기 위한 칼을 꺼내들었다. 조합이 건설사를 대상으로 여는 현장설명회 이후 이뤄지는 '입찰→홍보→투표→계약' 등 시공사 선정 전반에 걸쳐 처벌 수위와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대책 시행으로 당장 과도한 수주 경쟁이 움추러들고, 장기적으로도 공정 경쟁이 형성될 것으로 낙관했다.

국토교통부는 30일 재건축 사업장에서 건설사가 조합원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할 경우 시공권을 박탈하고 2년간 입찰참가를 제한하는 내용의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제도 전면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개선안은 도시정비법 등 관련 법령 개정을 거쳐 이르면 다음달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이는 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과도한 이사비 지급, 금품·향응 제공 등의 여러 문제가 불거지면서 뒤늦게나마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우선 앞으로 최초 사업 입찰시 시공과 관련 없는 이사비·이주비·이주촉진비,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제공 등이 금지된다. 이를 어길 경우 입찰은 무효로 처리된다. 또 현실성 없는 과도한 조감도를 제안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설계안에 대한 대안설계(특화계획 포함)를 제시하는 경우 구체적인 시공 내역도 반드시 제출하도록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장점검 과정에서 시공사의 계약내용을 면밀히 점검할 것"이라면서 "제안서의 각 시공 내역별로 제대로 집행됐는지 점검하고 공사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되는 경우 한국감정원의 적정성 검토를 받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통상 시공사 선정 총회 전 막판 변수로 작용하는 홍보활동, 일명 OS요원 역시 제재를 강화했다. 앞으로 건설사뿐 아니라 건설사와 계약한 홍보업체(OS)가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건설사가 책임을 지게 된다. 2년간 정비사업의 입찰참가 자격이 제한되고, 시공권도 박탈된다.

특히 무분별한 홍보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홍보요원의 명단을 사전에 조합에 등록해 등록한 요원만 홍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미등록 홍보요원이 활동하거나, 개별홍보 행위가 3회 적발될 경우 해당 건설사의 입찰은 무효가 된다.

일단 업계에는 이번 대책의 긍정적인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A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재건축 수주전에서 가격(분양가)나 설계 등 상품이 좋아도, 금품·향응 등의 '도 넘은 홍보전'으로 물타기가 됐다"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불공정한 수주경쟁이 사라져 오직 상품만 놓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음성적인 홍보활동도 건설사간 자율경쟁으로 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B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이후 과도한 이사비를 주는게 문제가 아니라,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이사비 지원 등 과도한 금품 제공이 문제였다"면서 "앞으론 이같은 행위가 제한되는데, 특정 건설사가 이를 어기며 음성적으로 홍보활동을 하면 상대 건설사가 과연 법적으로 따지지 않고 가만 있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무엇보다 건설사들이 재건축 사업 수주를 위해 투입하는 '수주추진비'가 줄어들면서 공사비 절감 및 설계 품질 향상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통상 건설사들은 사업 수주를 위해 도급액 대비 0.5%~1%의 금액을 쓰는데 클린경쟁으로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도급액 1조원 규모의 사업이라면 수주추진비는 최대 100억원에 달한다.

B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비는 아파트 상품에 들어가는 원가와 사업조건에 들어가는 원가가 있다"면서 "홍보활동 비용은 사업조건에 들어가는 원가인데, 이 비용이 상당 부분 빠지는 만큼 종전보다 공사비를 낮게 책정하거나 상품 품질 향상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대책에서 부재자 투표자를 해당 정비구역 밖의 시·도나 해외 거주로 한정하고, 투표기간도 1일로 제한하는 것은 과하다고 지적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개인의 재산권에 과도하게 행정력이 개입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면서 "부재자 투표 당일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할 경우 인감 및 위임장 등 서류를 준비할 여력도 없어 결국 그 투표권은 사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